혜경궁 홍씨 평생을 살얼음판을 걷는것 같은 삶을 살았던 여인
시아버지가 영조, 남편이 사도세자, 아들이 정조였던 너무나도 비극적이고 겁나는 삶을 살았던 여인 혜경궁 홍씨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이번에는 어린나이에 왕실로 시집와 시아버지의 편집증과 남편의 광증으로 인해 너무나도 비극적이고 힘든 삶을 산 혜경궁 홍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녀는 시아버지가 영조이고, 남편이 사도세자, 아들이 정조였던만큼 평생을 마음 졸이며 살았죠 혜경궁 홍씨는 1735년 6월 18일, 아버지 홍봉한과 한산부부인 이씨의 둘째딸로 태어났습니다.
화빈 윤씨
화빈 윤씨 1765년1824년 정조의 두 차례 간택 후궁으로 판관 윤창윤의 딸로 본관은 남원 정조 4년1780년 정조의 정비 효의왕후는 소생이 없고 첫 차례 후궁인 원빈 홍씨마저 간택된 지 1년도 안돼 세상을 떠나자 대왕대비 정순왕후 김씨는 후궁 간택을 청합니다. 정조 4년1780년 3월 10일 삼간택 후 화빈 윤씨가 최종 간택되어 화빈의 빈호와 경수의 궁호를 받고 입궁하게 됩니다. 화빈 윤씨의 상상임신 정조 5년1781년 음력 1월 17일 화빈 윤씨가 임신하여 산실청이 설치됩니다.
같은 해 음력 11월 2일 그녀의 해산을 기다리는 기록도 있습니다. 하지만 출산의 기록은 없습니다. 조금은 그녀는 상상임신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중록의 내용
한중록은 모두 4편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1편은 작가의 회갑해에 쓰여졌으며, 나머지 세 편은 순조 1년에서 순조 5년 사이에 쓰여졌다. 필사본은 14종이 있으며, 국문본 한문본 국한문혼용본 등이 존재합니다. 사본에 따라 한듕록, 한듕만록, 읍혈록 등의 이칭이 있습니다. 이 중 4편의 종합본은 한듕록과 한듕만록의 두 계통만 존재합니다.
한중록에서는 혜경궁 홍씨의 시점에서 지난날 겪었던 일을 서술하였는데, 임오화변의 참변을 주 내용으로 하였으며 여러 사건들 속에서 혜경궁 홍씨 자신이 살아온 일생을 순 한글로 기록한 일대기입니다.
이 글을 통해 조선 양반가 여성의 이면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것이 사료적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볼 수 있겠다.
수빈 박씨
수빈 박씨는 세도가의 자식이 아닌 빈곤한 집안 딸이었기 때문에 정조는 안도했습니다. 후궁인 된 그녀는 사치를 멀리하고 처녀시절처럼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성품이 어질고 행동이 조신하였습니다. 왕대비 정순왕후, 효의왕후, 혜경궁 홍씨를 잘 모셔 왕실의 복덩이라 불렸습니다. 순조의 어머니 정조 14년 1790년 수빈 박씨는 원자를 낳습니다. 제23대 왕 순조를 낳은 겁니다. 그리고 3년 후 숙선 옹주까지 낳으며 슬하에 1남 1녀를 둡니다.
원자를 낳았음에도 초심을 잃지 않은 수빈 박씨는 작은 천조각 하나도 궁녀들이 버리지 못하게 할 만큼 절약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원자가 세자로 책봉된 후 아첨하는 무리들이 그녀에게 귀중품을 진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수빈 박씨는 이들을 의금부에 잡혀하게 하며 귀감을 보입니다. 정조는 이런 수빈 박씨를 어질 현 현빈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총애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화빈 윤씨
화빈 윤씨 1765년1824년 정조의 두 차례 간택 후궁으로 판관 윤창윤의 딸로 본관은 남원 정조 4년1780년 정조의 정비 효의왕후는 소생이 없고 첫 차례 후궁인 원빈 홍씨마저 간택된 지 1년도 안돼 세상을 떠나자 대왕대비 정순왕후 김씨는 후궁 간택을 청합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본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한중록의 내용
한중록은 모두 4편으로 되어 있습니다. 궁금한 내용은 본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수빈 박씨
수빈 박씨는 세도가의 자식이 아닌 빈곤한 집안 딸이었기 때문에 정조는 안도했습니다. 궁금한 사항은 본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